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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불공정’에 분노하라

‘거대한 불공정’에 분노하라

내가 일하는 저널리즘스쿨은 시골에 있지만 세칭 ‘명문대’와 ‘지방대’ 출신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이다. 개원 초기 뼈저리게 반성한 것이 내 안의 편견이다. 무의식중에 출신 대학을 서열화해놓고 학생을 대한 것이다. 13년간 가르쳐보니 학생의 능력을 ‘SKY’ ‘인서울’ ‘지잡대’로 나눠 존중과 경멸의 시선을 보내온 사회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나지 않은 대학 출신은 대개 겸손이 몸에 밴 데다 선생에게 인정받으며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니 성취속도가 놀라웠다. 학벌을 감추고 뽑는 KBS에는 23명이 입사했는데, 서울 ‘명문대’ 출신은 3명뿐이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몇 과목에 뛰어난 학생을 뽑는 유럽 대학과 달리 전국의 또래 학생을 전 과목으로 줄 세우는 한국 대학입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우등생’ 한국에는 능력주의가 판친다. 실은 본인 능력보다 타고난 환경 덕분이 크지만.

살벌한 능력주의 경쟁 속에 성업 중인 게 ‘시험산업’이다. 창의성을 키우는 데 오히려 방해되는 사교육 열풍에 부모들 허리가 휜다. 사회에서도 영어점수를 요구하니 토익·토플 응시료로 나가는 외화가 엄청나다. 시험점수로 매겨지는 능력주의의 최대 병폐는 공정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잔도를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빈부격차를 노력에 따른 결과로만 보고 기득권층은 증세와 복지지출에 저항하면서 교육도 시장에 맡기라고 한다.

의사고시를 거부하는 의대생들은 ‘전교 1등’을 내세우며 최고수익을 당연한 보상으로 여기고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불공정’으로 몰아간다. 국민은 방역의 최전선에 나선 의사들의 헌신에 감동했으나 그 공감대마저 얇아졌다.

추미애 장관과 조국 전 장관 자녀의 ‘부모 찬스’에 불공정을 느끼는 이도 꽤 있다. 그러나 설령 휴가를 편법으로 연장했다 하더라도 병역기피에 견주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불공정이다. 우리나라는 권력기관일수록 군 면제자가 많다. 대통령조차 군대 가서 병역의무를 다한 이는 12명 중 2명뿐이다. 셋은 반란을 일으켰으니 병역의무를 이행한 게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때 본인 말고도 비서실장, 대변인, 총리, 국정원장, 감사원장, 8개 부처 장관 등 요직을 ‘군 면제자’로 채웠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부동시’, 곧 두 눈의 시력차가 크다며 군 면제를 받았다.

학력이 높으면 입대해도 행정병 등으로 일하는데, 그것도 감당하지 못할 ‘저질체력’이었던 자들이 국가행정 최고 책임자가 된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전·현직 법무장관 자녀들 신상을 발가벗기며 ‘불공정에 분노하라’고 써대는 보수언론, 그 사주들은 누구인가? 그들 중에 병역을 마친 이는 몇 대에 걸쳐 거의 없다. 보수언론과 검찰은 기득권동맹에 균열을 내려는 자의 티끌을 확대조명해 주저앉히려 든다.

‘SKY’대 일부 학생들이 주도한 ‘조국 자녀 입시비리 규탄집회’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대입제도를 부유층에 유리하고 창의성도 죽이는 ‘정시 확대’로 되돌려 놓았다. 공정에 관한 논의는 계층 간 큰 불공정은 외면하고, 계층 내 작은 불공정에 주목한다. 상당수 진보언론도 보수언론이 던진 사이비 의제에 편승할 뿐 맞대응할 진보의제를 잘 설정하지 못한다. 심각한 불공정 이슈들은 공론장에서 사라지고 공정사회는 더 멀어진다.

우리가 진정 분노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기득권층을 재생산하는 교육제도, 자산격차를 무한확대하는 부동산제도, 지지부진한 검찰개혁, 출발도 못한 언론개혁, 기득권 옹호센터가 된 일부 개신교단, 불법승계에 ‘올인’해온 삼성재벌…. 이 무참한 현실에 왜 분노하지 않는가?

기득권층은 자식까지 신분의 하향 이동을 막아주는 유리바닥을 만들려 든다. 누군가의 유리바닥은 누군가의 유리천장이라는 현실을 훤히 내려다보면서 ‘돈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공정과 공동체의 가치를 가르치던 교사들을 추방하는 데 검찰과 손잡았던 언론은 전교조 합법화 판결이 나자 대법원을 공격했다.

시인 김수영은 1965년에 이미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나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며 자책했다. 한국 사회의 분노는 왜 아직도 조그마한 데만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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