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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이 단 한명도 살아돌아가지 못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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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금문도 전투 -

중국의 턱밑에 도사리고 있는 대만의 금문도 위치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배가 기정사실화되던때...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대만으로 철수할 생각을 하게되고

대만 방어를 위한 최전방 보루로 금문도를 반드시 사수하기로 결정한다

 

1949년 금문도 전투 -

모택동은 장개석의 국민당군을 완전히 얕보고 금문도 점령과

대만 점령을 명령하면서 '우리가 공격 시늉만 해도 국민당은 알아서 무너질것'

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1949년 금문도 전투 -

모택동은 중국 본토로부터 겨우 2km떨어진 금문도쯤이야

단숨에 함락할것으로 생각하고 2만의 병력을 투입, 1949년 10월24일

야음을 틈타 상륙돌격을 실시하는데....

 

1949년 금문도 전투 -

상륙함이나 상륙정이 없던 관계로 각처에서 어선 수백척을 징발해

선봉대 1만명을 먼저 투입하고 

나머지 1만은 선봉대를 투입하고 돌아온 어선들에 태워 2차로 상륙시키기로 한다

 

1949년 금문도 전투 -

야음을 틈타 어선을 타고 상륙한 중국군 선봉대 1만은

악전고투끝에 상륙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으나.....

 

1949년 금문도 전투 -

그들을 기다리는것은 전차까지 앞세운 금문도 방어군 4만이었으니..

한마디로 우주관광을 당하게되고....

선봉대 1만을 투입하고 돌아가는 중공군 어선 수백척은

돌아가는길에 국민당 해,공군에 의해 모조리 격침당하고 만다.

 

1949년 금문도 전투 -

중공군은 선봉대가 눈앞에서  관광당하는걸 보고도 

타고 갈 배가 없어서 후속부대를 상륙시키지 못하고....

 

1949년 금문도 전투 -

결국 중공군의 선발대 1만은 금문도에서 전멸...

(전사 3천여명, 포로7천여명)

 

단 한명도 본토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것이 1949년 금문도 전투이고,

분노로 폭발한 모택동은 모든 전력을 동원해 대만을 점령하려 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고.. 중공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대만은 살아남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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